행동: 우리는 쉽게 바꾸지 않는다
■관성효과 (Inertia)
한 번 정해진 상태를 바꾸기보다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다.
변화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어도, 우리는 익숙함을 선택한다.
저의 한 일본인 지인은 예전에 이사하면서 NHK(일본방송협회) 수신료 해지를 깜빡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미 보지도 않는 방송이었지만, 해지 신청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져 거의 1년 가까이 요금을 계속 냈다고 합니다.
제가 해지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한 끝에 결국 해지를 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선택이 가장 쉬웠던 것입니다. 관성효과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하나의 선택지로 만들어버립니다.
■계획의 오류 (Planning Fallacy)
사람들은 어떤 일을 끝내는 데 걸릴 시간과 노력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그래서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믿지만, 결과는 늘 비슷하다.
한 번은 한국인 지인의 일본 여행 일정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만, 시간 계획이 지나치게 빠듯해 과연 그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로 정체나 테마파크에서의 놀이기구 대기 시간처럼, 실제 여행에서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계획의 오류는 미래의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가정한 채, 변수와 지연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매몰 비용 (Sunk Cost)
이미 들인 시간, 돈, 노력이 아까워서 잘못된 선택임을 알아도 계속 이어가는 경향이다.
과거의 비용이 현재의 판단을 붙잡아 둔다.
저는 크레인 게임을 좋아합니다.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쉽게 뽑히지 않는 상품이 있었고, 나중에는 이미 투자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게임을 계속 이어간 적이 있습니다. 결국 상품을 뽑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새 상품을 가게에서 사는 편이 더 저렴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게임 횟수를 미리 정해두고 즐기고 있지만, 그때의 경험은 매몰 비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임을 느꼈을 때는 이미 지불한 비용보다, 앞으로의 손실을 줄이는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끼효과 (Decoy Effect)
선택지 하나가 추가되면, 원래는 망설이던 선택이 갑자기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비교 기준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쉽게 행동을 바꾼다.
햄버거 가게에서 단품을 살지 세트를 살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아 햄버거 단품과 음료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세트에는 감자튀김까지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트를 선택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느껴져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지만, 결국 배가 불러 감자튀김은 대부분 남기게 되었습니다.
미끼효과는 선택지의 구성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실제 필요와는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감정: 우리는 느낀 뒤에 판단한다
■손실회피 (Loss Aversion)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감정적 고통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얻는 것보다 잃지 않는 선택에 더 집착한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쇼핑을 할 때, “세일 마감 임박”, “재고 거의 없음”과 같은 문구를 보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마음이 급해져 구매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사지 않으면 단순히 이득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계산대에서 결제를 하려는 순간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할인이 적용된다는 안내를 받으면 “지금이라면 정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매장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손실회피는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잃을 가능성 자체를 과도하게 크게 느끼게 만들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
처음 접한 정보나 숫자가 이후 판단의 기준점이 된다.
그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아도, 감정은 쉽게 그 앵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앵커링 효과는 아울렛처럼 대부분의 상품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정가를 보고 너무 비싸다고 느꼈다가, 할인된 가격을 보면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실 그 할인 가격도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처음 본 정가가 기준점이 되면서 “이 정도면 꽤 합리적인 구매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멘탈 회계 (Mental Accounting)
사람들은 돈이나 자원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계정으로 나눠 관리한다.
그래서 같은 금액이라도 출처나 용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낀다.
최근에는 어디에서 물건을 구매하든 포인트가 쌓이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된 것 같습니다. 포인트가 어느 정도 모이면 현금처럼 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저 역시 자주 이용하는 곳에서는 매번 포인트를 적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인트는 실제로 내가 가진 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포인트로 무언가를 살 때는 큰 고민 없이 바로 구매해버리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만약 제 통장에서 바로 빠져나가는 돈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쉽게 결제할 수 있었을까요. 멘탈 회계로 인해 같은 가치의 돈이라도 출처나 이름에 따라 소비 기준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확신 바이어스 (Confirmation Bias)
이미 믿고 있는 생각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려는 경향이다.
한번 형성된 감정과 판단은 스스로를 강화하며 굳어진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점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첫인상, 혹은 제1인상이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예전에 어떤 사람의 첫인상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부정적인 언행을 할 때마다 그 인식은 더욱 강화되었고, 반대로 긍정적이거나 좋은 면에 대해서는 거의 보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충분한 대화를 나누면서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확신 바이어스로 인해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화시키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쾌락적응 (Hedonic Adaptation)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점점 익숙해진다.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을 해도 만족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제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살았던 곳은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한적한 지역이었습니다. 시내 중심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재 거주 중인 곳으로 이사했을 당시에는 정말 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이전에 살던 곳과는 주변 환경이 너무나도 달라, 이사를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토록 기뻐했던 거주 환경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었고, 다음에는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쾌락적응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감정을 점차 익숙해지게 만듭니다.
시간: 우리는 미래의 나를 항상 배신한다
■현재지향 바이어스 (Present Bias)
사람들은 미래의 보상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더 크게 평가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알면서도 현재의 선택을 반복한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매일 고민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피곤한 날에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배달 음식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당장의 피로를 덜고 싶은 마음이 장기적인 지출 관리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선택은 사소해 보이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어느새 지출 습관으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현재지향 바이어스는 이렇게 지금의 편안함이 미래의 이익을 쉽게 밀어내도록 만듭니다.
■쌍곡할인모델 (Hyperbolic Discounting)
보상이 가까워질수록 그 가치는 급격히 커지고, 멀어질수록 빠르게 할인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미래의 이익을 과소평가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과대평가한다.
저는 아침이 너무 피곤해 매일 잠에서 깰 때마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하고 다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일찍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이 훨씬 편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잠들기 전의 잠깐의 자유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쌍곡할인모델로 인해 다음 날 아침의 상쾌함이라는 보상은 멀게 느껴지고, 지금 당장의 휴식은 지나치게 크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보상이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연보상회피 (Delay Discounting)
보상이 지연될수록 기다리는 비용이 크게 느껴져, 선택의 매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같은 보상이라도 지금 받을 수 없다면 쉽게 포기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글을 하나 쓰는 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지만, 그에 대한 반응이나 성과는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블로그가 아니라,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는 다른 일에 시간을 써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하게 되기도 합니다. 지연보상회피는 이렇게 보상이 늦어질수록 그 가치를 실제보다 낮게 느끼게 만들어, 기다림 자체를 부담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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